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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일부분

장자를 이론에대해서 생각해보자

장자에 의하면, 언어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언어가 정확히 반영해야 할 텐데, 의도와 의미는 대응할 뿐 같지 않다는 점에서 오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화자는 나무에 걸려있는 사과를 언급했으나 청자는 식탁 위에 놓여있는 사과로 오해했을 경우와 같은 사례에서 드러난다. , 언어는 실제 의도와 일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도의 정확한 전달을 염두에 두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면 어떠한 의도도 전달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장자는 마음은 무엇을 하려 하지만 곤해지기만 하고, 입은 무엇을 표현하려 하지만 열리기만 하고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 삼아 당신을 위하여 그 대략을 논하여 보겠습니다.라고 시험 삼아 말한다고 하며, 언어적 전달의 절대성을 부정한다. 결국 이러한 한계점을 인식하고 보다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하는데, 장자는 문학적 은유를 통해 도에 관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이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중도(中道)이다. 장자는 이에 대해 칙양(則陽)편에서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모두에서 떠나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야기를 통한 의도 전달이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라는 의미에서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자는 언어와 세계가 대응한다는 점을 부정했다. , 언어의 존재가 세계의 실재성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양한 명사들 중 그 실체가 세계에 실재하는 것들이 있고 실재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과와 같은 물상물이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사랑과 같은 추상물이 있다. 그런데 언어와 물상물이 대응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인해, 이름()이 대상의 실체적 본질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함을 통해 끊임없이 대상화한다. 무언가를 말함으로써 나와 그 대상과의 거리가 생기는 주객분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나와 사물 간의 분별을 말하는 것이므로 나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대상 자체에 대한 이해인 참된 앎과 멀어지는 길이라는 것이다.

언어 자체의 한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에서 시비(是非) 개념으로 인해 추가적인 혼란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제물론에서 다음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말은 어디에 가려져 있다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가? 말은 화려함에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존재하게 되며,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이편에서 옳다 하고,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은 이편에서 그르다고 말한다.” 이는 시비 기준의 주관성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이 언어에 주관적인 편견을 담아서 각자의 시비의 표준이나 기능을 따로 설정하기 때문에 올바른 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언어는 의도 전달의 부정확성, 실체론적 언어관으로의 오해, 시비 개념으로 인한 혼란이라는 점에서 세 가지 한계가 있지만 언어적 전달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고 시험 삼아 해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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