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고 보고 결정짓는 사물들이 순수한 본질인가? 생성·소멸하는 사물들은 이데아의 그림자 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세상에서는 대부분이 생성되고 소멸하는데 그럼 무엇이 참된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해답을 수 천년전에 이론을 제시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대가 다름에도 이론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철학이란 단지 과거 한명의 인간이 그 시대에만 맞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나 적용되는 이론을 제시 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놀랍다. 그런데 플라톤은 여기서 포박되어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이 포박이 풀리고 일어나서 목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이 전부 빛에 의해 투영된 사물이고 그 사물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본래 물질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거기 있는 사람들은 손으로 하는 그림자 연극을 본 것이고, 그것을 사물로 인지했다. 거기다가 동굴 밖으로 나갈려는 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가기위해서는 가시와 자갈을 지나쳐야하는데 모닥불과 멀어지면 멀어 질수록 밑이 보이지 않아서 자주 엎어지고 다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도달하게 된다. 이 과정을 겪어야만 본질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동굴 속에서 나오면 나올수록 힘들고 많이 점점 안보여지는데, 동굴을 나가면서 사물의 본래모습을 보게 된다. 이 과정을 이데아의 인식=진리의 인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름길, 상승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식으로만 끝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 후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천이라는 것은 내림길을 의미한다.
동굴 속에서 빠져나왔지만 플라톤은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을 한다. 들어가서 포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사물은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누가 젓가락을 보고 이것은 밥그릇이지라고 말하면 믿겠는가? 그러나 계속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물이라고 말을 한다. 사람들은 이 사람만 없다면 이러한 소리를 안들어도 되고 기분이 상할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죽이자고 해서 죽여버린다. 플라톤은 이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동료 시민들에게 “당신들이 보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결박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 아래 빛나는사물의 진짜 모습을 보라”고 거듭 촉구했다면, 한 번도 결박에서 풀려나본 적이 없는 시민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죽어간 것이다. 플라톤은 주장은감각적 지각은 많이 유요하지만, 그러나 많은 오류들이 존재 하고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 그대로 있지 않으니 그걸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데아들의 세계에는 책상의 이데아라고 한다면 영혼하고 불멸하고 하나이다. 하지만 사물의 세계에서는 책상들, 생성, 소멸, 운동, 변화 등 여러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정보는 사물은 아니지만 특성상 사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생성, 소멸, 운동,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들어 어른들은 스마트폰,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간다. 배우는 것보다 생성이 훨씬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잘못된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언어에서도 빠르게 지나간다. 지금 10대20대가 사용하는 언어로 “실화, 가즈아, 컹스, 꼰대, 오지네, 헬조선, 이생망” 등등 어른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쉬운 언어가 아니다. 이 언어 또한 금방 사라진다. 이러한 판단이 이러한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데아의 이론을 이해하고 적용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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